비가 오려면 정말로 무릎, 허리가 더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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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비가 오려나? 허리, 무릎이 쑤시고 아프네.

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 (출처 : 위키미디어)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통증 일기예보는 간혹 기상대의 일기예보보다 정확할 때가 있습니다. 개미와 같은 곤충들이 비올 것을 미리 알고 움직이는 것처럼, 관절염과 같은 만성 통증질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또한 기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흐린 날 혹은 비 오는 날 그분들의 몸은 더 큰 통증을 맞이하곤 합니다.

날씨 연관 통증(Weather-related pains)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통증은 고대 로마 시대의 기록에도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원전 400년 히포크라테스는 기후의 변화와 질병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내용을 언급하였습니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통증을 기상통(気象病)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1987년에 처음으로 관련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이후 몇몇 연구에서 관절염 등의 만성 통증의 변화가 날씨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들이 제기되었습니다.

기원전부터 논의되어온 이러한 날씨 연관 통증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여전히 지속 중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르신들의 관절 통증으로 정확하게 날씨를 예측하는 현상이 과연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을까요?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번에는 날씨와 통증의 연관성에 대한 몇몇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날씨 연관 통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날씨가 어떻게 통증을 악화시키나?

날씨와 통증의 연관성에 대해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들은 바로 류마티스 내과 의사일 것입니다. 이는 외래 진료에서 노인이나 관절염 환자분들이 하시는 날씨에 따라 통증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기 때문입니다.

older-woman-with-lower-back-pain_SYPM5paVs필자가 진료할 때에도 간혹 관절염 환자분들이 오늘 통증이 더 심해져 내일 비가 올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듣곤 합니다. 의과대학 시절에도 류마티스 내과 교수님에게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관절 내 압력 차가 발생해서 통증의 변화가 생길 것 같다고 대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좋은 대답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정답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미국 류마티스 학회(American College of Rheumatology)의 학회장인 David Borenstein 교수는 “기압의 변화가 관절염 환자의 통증을 악화시킨다. 온도 변화나 바람 등의 변화는 통증과 관련이 없으며, 비가 오기전 통증을 느끼는 것은 기압의 변화가 관절강 내 압력을 변화시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그는 “염증 주변의 신경은 정상 신경보다 더 예민할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기상의 변화에도 반응하여 통증을 느낄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여 기압과 통증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통증과 관련하여 또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온도입니다. 따뜻한 곳으로 이사하면 통증을 덜 느낄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이전에 시행된 연구에서는 오히려 따뜻하고 경치 좋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날씨 변화에 더 민감하게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된 적이 있었습니다.

현재로서는 지역에 따른 온도차가 통증에 차이를 가져온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간혹 따뜻한 지역으로 여행을 갔더니 관절염 통증이 덜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러한 예는 통증의 기본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즉, 우리가 느끼는 통증은 통증을 악화시킬 수 있는 물리적 변화뿐만 아니라 기분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즐거운 기분이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낮추게 되고, 또는 일상에서 느낄 수 없었던 다양한 새로운 경험이 통증을 느낄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여행 기간 동안 통증을 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일부 항우울제는 만성 통증을 치료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며 효과 또한 강력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통증과 날씨 관련 이론들은 실제 연구결과에 반영되어 날씨가 통증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을까요?

 

날씨와 관절염 통증에 관한 연구결과

의학의 급격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날씨 연관 통증에 대한 현대 의학의 지식은 고대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최근 들어 날씨와 만성 통증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확실한 근거로 연관성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는 부족합니다.

가장 최근에 시행된 연구는 1년 전에 시행된 연구였습니다.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의학 학술지인 영국 내과학회지(BMJ)에 날씨와 관절 통증과의 연관성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비오는날
출처 : 픽사베이

연구진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외래에 방문한 1100만 명의 관절염이나 요통 환자를 의료 보험 정보를 통해 분석하였습니다. 연구진은 환자의 외래 방문 일자와 기상 데이터 베이스를 분석하였고, 비 오는 날 더 많은 환자들이 통증으로 외래를 방문하지는 않는 것으로 분석하였습니다. 비가 오는 날, 비가 오기전, 비가 많이 내리거나 장기간 비가 내리는 것은 환자들이 예약 날짜 이전에 미리 외래를 방문하거나 당일 방문 환자 수가 늘어나는 것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본 연구가 대규모의 환자군을 대상으로 시행되었기에 어느 정도 통계적 의미는 있을 수 있겠지만, 외래 방문 추이만을 본 연구결과만으로는 환자별 날씨에 따른 통증 정도를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통증과 날씨의 연관성을 보기 위한 연구 결과는 없었을까요?

마찬가지로 작년에 호주에서 천명의 요통 환자와 350명의 무릎 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시행되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환자가 통증을 호소할 당시의 날씨와 1주, 1달간의 날씨를 바탕으로 관련성에 대한 분석을 시행하였습니다. 연구결과 온도, 습도, 기압, 바람은 환자들의 통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이러한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날씨가 만성 통증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우리 할머니의 통증 일기예보는 정확한데,
왜 의학적으로는 관련이 없다는 거죠?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데는 사람들의 인지와 관련된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한번 옳다고 믿는 생각을 잘 바꾸려고 들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확증 편“이라고 합니다.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관련된 정보 해석에 편향적인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가 오면 통증이 심해진다는 통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얼핏 들은 일기예보의 정보 또는 구름 낀 하늘을 본 것을 잊은 채 “무릎이 아프니 비가 올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는 비가 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관절염으로 인한 무릎 통증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실제 병원에 방문할 정도로 큰 통증이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확증 편향을 통한 인지 오류가 통증을 더 크게 느껴지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비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아픈 것처럼 느낀다는 것입니다.

긴장성두통

물론 통증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심리, 기분과도 연관되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날씨에 대한 통념이 통증을 악화시킨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통증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는 주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연구 자체의 어려움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련의 연구결과들이 날씨와 통증의 관계를 부정하고 있을지라도, 지금까지 시행된 연구 방식들은 기온, 기압 등의 수치적 변화와 환자가 실제 느끼는 주관적 통증의 정도를 수치화 한 객관적 데이터들을 분석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씨와 통증에 대한 연관성을 확실히 밝혀내기 위해서는 추후 객관적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더 많은 연구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날씨에 의한 기분 변화가 통증의 정도를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현재 연구들은 날씨와 통증의 관계는 크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아직 연구들의 양과 질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 많은 연구들을 통해 고대로부터 이어진 이러한 의문점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날씨 연관 통증을 겪는 분들에게 “날씨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만성 통증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겠어요”라고 위로해 드리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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